[오덕교 칼럼] 제1장 초대교회 설교자와 설교(2)
오덕교 총장 /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1. 광야교회 설교자와 설교
그 후 하나님은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멍에로부터 구출하심으로 구원의 역사를 새롭게 시작하였다. 모세는 “이집트와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적과 표적을 행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아 이스라엘에 선포하였고, ‘광야 교회’(행 7:36, 38)를 세웠다. ‘광야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 (삿 2:10). 사람들은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았고,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삼상 3:1).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불러 설교 운동을 전개하였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여호와께서 그(사무엘)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 선지자로 세우심을 알았더라” (삼상 3:19~20). 설교 운동과 함께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고”(삼상 4:1). 이스라엘 백성은 미스바에 모여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며 회개 운동을 벌였다(삼상 7:6).
그 후 사울에 의해 무너진 교회를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회복하였다. 열왕기 시대를 거치면서 교회의 타락은 더욱 심화하여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이방인이 섬기던 신을 섬기고, 자녀들을 번제물로 이방의 신들에게 바치는 등 종교적 부패가 심하였다. 이러한 영적인 암흑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요시야를 들어서 다시 한번 말씀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어린 왕이었지만, 산당(山堂)과 아세라 목상(木像), 그리고 우상들을 제거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고,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하였다. 그는 성전을 수리하다가 율법책을 발견하였고, 서기관 사반에게 주어 그 율법 책을 읽게 하였다. 그는 율법서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려서 자신의 옷을 찢으며 통곡하였다(대하 34:19,22,27). 그 결과 종교개혁이 크게 일어나, 이스라엘은 이교도들이 섬기던 제단과 신당을 부수어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다(왕하 22장~23장). 그 후에도 이사야와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이 나타나 설교를 통해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였고, 아모스와 요엘, 하박국과 말라기와 같은 선지자들과 스룹바벨과 에스라에 의하여 설교 운동이 이어졌다(스 5~6장, 느8~9장, 13장).
이러한 구약의 설교 운동 중 기억할 만한 것이 에스라의 설교 운동이다. 에스라는 유럽에 능통한 학사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 교회 공동체가 거의 멸절될 상황에 있을 때 설교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무너진 성전 재건을 주도하면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 책을 읽어 주었다. 그가 율법 책을 펼 때는 “모든 백성이 일어섰고”(느 8:5),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 때는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며 응답하면서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다(느 8:6). 에스라의 설교를 들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죄로 인해 슬퍼하고 통곡하며 울었다. 회개 운동이 크게 일어나 여호와의 성일을 지킬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에스라와 느혜미야는, “오늘은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고 설득하였다(느 6:9). 에스라의 설교 운동에 힘입어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였다”(느 9:2~3). 그렇지만 이러한 에스라의 설교 운동은 얼마 후 잊혔고, 말씀의 빛이 사라지면서 영적 암흑 시기로 이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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